1일차 | 빛이 있으라

창세기 1:1-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의 첫 문장은 따지지 않습니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선언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니라”의 히브리어 바라(בָּרָא)는 단순히 ‘없던 것을 있게 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혼돈에 질서를 세우는 일입니다. 흑암과 빛이 나뉘고, 형체 없던 것이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창조는 어지러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 한복판에서 질서를 세워가시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보다 앞선 장면을 보여줍니다. 빛이 부르심을 받기도 전에, 그분의 영이 이미 수면 위에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히브리어 라하프(רָחַף)어미 새가 새끼 위에 날개를 펴고 품는 그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혼돈을 내려다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위에 몸을 펴고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명령은 품음 위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도 어쩌면 혼돈하고 공허할지 모릅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책상, 답이 보이지 않는 관계, 끝이 보이지 않는 일. 그러나 그 혼돈 위에 —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 하나님의 영이 이미 따뜻하게 머물러 계십니다.

빛은 흑암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밝힙니다. 그 밝히심은 차가운 명령이 아니라, 이미 우리 위에 펼쳐진 그 날개에서 어둠을 헤치고 들어오시는 한 마디 말씀입니다.

한 걸음 더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혼돈하고 공허한” 영역은 어디입니까? 그 위에 이미 날개를 펴고 계신 하나님의 영을 의식하며, 그 자리에 오늘 한 마디 말씀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

주님, 제 흑암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주님 앞에 가져갑니다. 제가 알지 못할 때에도 저 위에 펼쳐진 그 날개를 잊지 않게 하소서. 비추소서. 밝히소서. 오늘 하루, 그 품으심 안에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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